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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토치! 화면은 잘 보여? 소리가 버벅거리지는 않고?'

 

  타블렛 화면 속 비춰진 툰드라가 건네온 말에,

 

  "통신환경은 양호하다. 이 쪽의 영상과 음성은 괜찮을지 모르겠군."

 

  라고 토치가 되묻는다. 툰드라는 괜찮아! 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 밤의 스케줄은 첫 번째로는 날씨, 두 번째로는 통신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기만 하다. 안도한 토치는 타블렛에 연결한 외부카메라를 조정해 불빛을 꺼뜨린 실내와, 그리고 억새풀로 장식한 꽃병을 지나 열어젖힌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향하도록 했다. 맑게 갠 공기가 머무는 산 속, 가을의 별하늘 한 가운데에는 유달리 형형한 빛을 내는 큰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이상적 일만큼 아름다운 명월이기에 토치는 다시금 안도한다.

  타블렛 화면 속의 툰드라가 감탄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한걸! 망원경도 안 달았는데 이 정도 인거지?'

  "물론, 달지 않았다. 요즘 같은 계절에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런 달을 밤마다 볼 수 있거든.''

  '그럼 우리는 오늘 밤 정말 좋은 구경을 하고 있는거네. 참 좋다.'

 

  행복에 겨운 툰드라는 카메라를 향해 눈부시게 웃어 보였다. 순간 보름달과 대등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토치였지만 툰드라와 달과의 아름다움은 과연 비교할 대상으로서 적절한가에 대해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고민하다가 툰드라의 미모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고서야, 이 달빛 아래에서 툰드라가 아이스댄스를 춘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덧없이 훌륭하겠거니하는 이미지의 비약으로서 끝을 맺었다. 보름달이 비추는 조명아래 찬란히 빛나는 툰드라가 밤이 내리는 천막을 등지고 광활한 호수의 은반 위를 거니는 모습은 틀림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토치를 현실로 되돌려버린 것은, 타블렛에서 울린 착신음이었다. 정신을 차린 토치가 알림창을 확인해본다. 발신자는 툰드라. 톡, 하고 데이터를 열어보니 화면 가득 고화질의 사진이 표시되었다. 보름달이 비춘 달빛에 반사되어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그 윤곽을 드러내는 빙판 위, 눈덩이가 한아름 쌓여져있는 사진이다. 눈덩이 옆에서 달을 향해 손을 뻗는 자세로 폼을 잡는 툰드라와 산처럼 쌓인 눈덩이를 신기한 눈치로 보고 있는 스노우 로빗이 나란히 찍혀있었다. 토치의 이미지와는 다소 달랐지만, 달이 비추는 은반 위 서있는 툰드라, 라는 대목까지는 얼추 들어맞는다. 토치는 저도 모르게 후후, 하고 작은 웃음을 흘렸다.

 

  마이크 너머로 들리는 토치의 웃음소리에 툰드라가 타블렛 화면 너머로 어때? 라며 감상을 물어온다.

 

  '퍽 보기좋은 그림이지? 눈덩이는 네가 전에 알려준 유키미 당고를 빗대어 만들었는데.'

  "한눈에 보고 알아챘다. 달빛에 비춰진 툰드라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서, 눈을 땔레야 땔 수가 없었거든."

 

  토치의 솔직한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툰드라는 생긋 웃으며 끄덕인다.

 

  '그치! 가장 달이 예쁠 시간에 찍은 내 자신작이야! 츠키미 당고는 그러고 나서 로빗이 몽땅 망가뜨렸지만.'

  "스노우 로빗은 호기심이 왕성하니, 어쩔 수 없지."

  '그렇다니까. 눈덩이를 물끄럼히 보는가 싶더니 달려들어서 부숴버렸지 뭐야!'

  "원래 있던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체이다 보니 신기했을거야. ......지금도 달이 보여?"

  '보이지. 보낸 사진처럼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툰드라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타블렛 화면이 흔들린다. 그러고 나서 화면 너머로 보여진 달의 모습은 조금 흐릿하게 불투명했으며 빙판의 윤곽도 희미하기만 했다. 구름이라는 베일에 감싸여진 모습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신기하게도 방금 전의 사진을 본 후에는 살짝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달은 그저 변함없이 달일 뿐인데 (사진과 타블렛 화면 속 영상과의 차이점이라고는 풍경 속에 툰드라가 있고 없고의 차이 뿐이었으나 툰드라가 없는 것이 감점 요소라면 그 어떤 사진이나 풍경도 똑같게 여겨질 뿐이었다──지금의 토치로서는) 애초에 달은 변함없이 달일 뿐이라고 한다면, 원체 달구경이라고 하는 말도 참 이상한 소리처럼 들린다. 보름달은 시기가 되면 매 달마다 바라볼 수 있을 뿐더러, 형태나 크기도 그다지 크게 변함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가을에 뜨는 달은 특히 좋다고 하면서 굳이 연례 행사처럼 치르고 있는 것이 말이다.

 

  토치에게 있어서 달구경이란 일의 특성상, 매 년 열리는 연간 이벤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었으나 오늘의 달구경만은 그런 인식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극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툰드라로부터 같이 달구경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 툰드라, 이번 임기는 내년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맞아. 토치는 지금 시기가 한창 바쁠 때이기도 하고, 극지용 부품 교환도 어려우니 오기는 힘들겠네?

  - 유감스럽지만 그 말대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달구경을 하지?

  - 바로 그거야. 들어봐, 토치. 달은 어디에서 봐도 달이잖아?

 

  토치와 툰드라, 이 둘이 있는 장소는 각각 시차도 크고 거리도 멀지만 달과의 거리는 거의 같다. 그렇다면 같은 달을 함께 올려다보자는 툰드라의 현안에 토치는 기꺼이 찬동하고 나섰고, 그리하여 캠프장과 극지를 잇는 원격 달구경이 개최된 것이다. 당일 밤 날씨가 좋을지, 통신 상태가 좋을지는 그 날이 오기까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토치와 툰드라는 같은 달을 함께 올려다보기를 고대하며 달구경을 위한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서로 교감할 수 없다면, 다가가 기댈 수 없다면, 마음만이라도 거리와 시간에 제약을 두고 싶지 않다. 달을 사이에 두고 아주 잠깐만이라도 말이다. 토치와 툰드라는 서로 그리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심정이기에 더더욱이, 한날한시에 달을 구경한다면 더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치도, 툰드라도, 사실은 같은 달을, 같은 장소에서 보고 싶다고.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가가, 곁에 기대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봤을때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맨스라는 필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간의 거리를 줄여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깊은 산 속 캠프장의 오두막 한 켠 창문가에서 달을 바라볼 토치도, 극지의 연구소 기지를 등지고 빙판에서 달을 바라볼 툰드라도, 똑같은 감정을 끌어안은 채 너나할 것 없이 중얼거렸다.

 

  '달까지 날아갈 수만 있다면 별들에 둘러싸여 춤춰보고 싶어.'

  "별하늘에 봄이 온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

  '봄이 올 별하늘까지 함께 가주겠어?'

  "물론이지. 나는 툰드라의 손을 마주잡고 어디라도 함께 할 거다."

  '키스도 해줄 거야?'

  "툰드라의 댄스가 끝난 후라면 얼마든지."

  '내가 날이 가도록 춤추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기다려 줄 거지?'

  "툰드라, 네가 만족할 때 까지 춤을 추었으면 한다. 나는 줄곧 기다릴 테니."

  '기쁘다. 토치는 거짓말 안 하니까, 나를 위해 언제까지나 기다릴 셈인 거네.'

  "툰드라한테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두 로봇 간의 상호답문은 일정한 리듬을 갖고 지속되었다. 토치의 다리 근처에서 달과 토치를 바라보던 와일드 로빗과, 툰드라의 근처에서 달과 툰드라를 바라보던 스노우 로빗이 이 둘의 음성에 포함된 속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센스를 발휘해 20세기 중반에 유행했던 곡을 그 자리에서 재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빗 타입의 애니메트로닉스에는 라디오 기능도, 하다못해 목소리에 따라 나뉘는 감정, 심경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상위 부품은 달려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와일드 로빗과 스노우 로빗은 두 로봇의 대화의 리듬만을 주워듣고는 그것이 '노래'라고 해석했는지, 본체를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토치와 툰드라의 노래에 맞추어 토끼가 춤을 추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름달이 걸린 밤에 토끼가 춤을 춘다니. 달구경에는 더할 나위없는 시츄에이션이었다.

 

  화면의 구석에 보이는 로빗의 댄스를 발견한 둘은 그것이 보기에 참 기특하고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참, 툰드라."

  '후후후. 뭔데, 토치?'

  "내년에는 옆에서 함께 같은 달을 보자."

  '좋아. 그렇지, 그럼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꼭 그리로 갈 테니까.'

  "그래. 기다리고 있지. 기대하고 있을게."

  '약속이야.'

  "약속이다."

 

  같은 달을 올려다보는 두 로봇의 말에 맞추듯이 로빗들은 빙그르르하고 한 바퀴를 돌았다. 오늘 밤이 가진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로빗들이었지만, 무언가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이 서로의 보스에게 있어서 참 기꺼운 일이라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었기에, 또 한번 폴짝하고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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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chman x Tundr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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